대전이라는 도시를 떠올리면 과학의 도시, 정부 출연연, 엑스포 과학공원 같은 표지가 먼저 떠오를지 모른다. 하지만 저녁 무렵, 중앙로 지하상가를 빠져나와 은행동 사거리로 올라서면 풍경이 달라진다. 간판 불빛이 켜지고 음악이 서서히 볼륨을 올린다. 피자 냄새와 튀김 냄새가 얽히는 사이로 잔을 부딪치는 소리, 바텐더가 셰이커를 흔드는 리듬이 귀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청춘의 거리다. 오래 전부터 대전 젊은이들의 약속 지점이었고, 군인과 대학생, 직장인의 저녁이 교차하는 선로 같은 곳이다. 이 거리에서 칵테일을 즐긴다는 건 단순히 술을 마시는 일이 아니다. 공간과 사람, 손맛과 취향이 맞물리는 경험이다.
여기서는 관광 브로셔의 문장 대신, 바에서 내주던 희미한 조도의 기억과 바텐더들의 손, 가격표와 메뉴판, 얼음의 투명함 같은 디테일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대전에서 10년 넘게 밤을 보냈고, 손님으로, 때로는 기획자로, 지인 바의 오픈을 도운 적도 있다. 그동안 알게 된 선택의 요령, 시간대별 분위기의 차이, 주문 팁과 예산 감, 제로 프루프까지의 범위, 마지막으로 다음날을 덜 후회하게 해주는 방법까지 묶어본다.
청춘의 거리의 지형과 동선
청춘의 거리는 은행동을 중심으로 문화예술의거리, 으능정이 거리, 중앙로역과 대전역 사이를 잇는 축을 품고 있다. 골목으로 들어갈수록 간판 색은 화려해지고, 2층과 지하에 숨은 공간이 많다. 초행이라면 낮에 한 번 답사해 보는 편이 낫다. 이 지역은 골목마다 분위기가 달라서, 같은 블록에서도 어느 입구로 들어섰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대로변의 큰 간판은 체인 이자카야나 펍이 차지하고, 코너를 돌면 소규모 칵테일 바, 내추럴 와인 바, 위스키 바가 줄지어 있다. 대전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주말이면 외곽에서 차를 몰고 오는 손님이 많아 9시 이후엔 차분한 대화가 어렵다. 조용한 시간을 원한다면 평일 7시에서 9시 사이가 좋다.
지하에 위치한 바들은 소음에서 자유롭지만, 입구를 놓치기 쉽다. 계단 위에 놓인 작은 보드, 문고리 옆의 벨 같은 사소한 표지에 신경을 쓰자. 반대로 2층 이상의 바는 유리창을 통해 내부 분위기를 가늠하기 좋다. 손님이 가득 찼는데도 소음이 과도하지 않다면, 어쿠스틱 패널이나 천장 흡음재를 제대로 쓴 곳이다. 그런 곳은 얼음과 글라스 관리에도 대체로 신경을 쓴다.
가격대와 그 이유
서울 주요 상권에 비해 대전은 기본 칵테일 가격이 2천에서 4천 원 정도 저렴하다. 하이볼이나 진토닉 같은 베이식은 9천에서 1만 2천 원, 시그니처는 1만 3천에서 1만 8천 원 사이가 일반적이다. 수입 주류 가격이 전국적으로 비슷한데도 이 정도 선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임대료 차이와 회전율, 그리고 인건비 구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유독 비싼 메뉴가 있는데, 대개 다음 셋 중 하나다. 싱글 몰트 캐스크 스트렝스 기반, 생과일 대량 사용, 혹은 집정거르기나 인퓨전 같은 시간 집약적 공정을 거친 경우다. 시그니처 칵테일이 2만 원에 가까워도, 과정을 듣고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판단해 보라. 한 잔이 긴 대화가 된다.
팁 문화는 뿌리내리지 않았다. 계산서에 별도 서비스 차지가 붙는 경우도 드물다. 대신 바텐더와 몇 마디를 주고받고, 유리잔이나 물 서브가 섬세했다고 느꼈다면, 다음 방문에서 추천을 믿어주거나, 시그니처를 시도해 주는 것이 이 동네의 암묵적 예의에 가깝다.
주문의 기술, 대전 버전
대부분의 바는 클래식 레시피를 기본으로 하고, 지역 특산물이나 제철 과일을 얹은 시그니처를 병행한다. 모던 클래식 몇 가지를 기준으로 원하는 맛의 방향을 설명하면 실패 확률이 줄어든다. 대전 바텐더들은 손님과의 대화에 거리낌이 적다. 처음 방문했다고 말하고 취향을 몇 단어로 요약해 보자. 진 기반, 시트러스 강하게, 설탕 적게. 혹은 위스키 베이스, 스모키는 피하고, 쌉쌀한 피니시. 구체적일수록 좋다. 달달한 과일 맛이 먹고 싶다 정도로는 광범위하다.
한 가지 팁을 더하자면 얼음 요청이다. 언더락스에 큰 얼음을 쓰느냐, 큐브 아이스를 쓰느냐가 마우스필과 희석율을 좌우한다. 진토닉을 주문할 때 큰 얼음으로 부탁하면 향이 오래 간다. 반대로 마르가리타처럼 셰이크 후 스트레인하는 칵테일은 바가 준비한 방식 그대로가 좋다. 실수로 향이 죽는다.
시간대별 분위기와 자리 고르기
평일 초저녁에는 데이트 커플과 혼술 손님이 섞여 있는 반면, 금요일과 토요일은 단체가 많다. 4명 이상의 팀이라면 바 테이블보다 소파 섹션을 미리 예약하는 편이 낫다. 바 카운터는 바텐더의 손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시그니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기 좋다. 좌석 간격이 넓은 곳을 원한다면 코너 자리를 찾아라. 유리뒤주 같은 데칸터, bitters 라벨이 줄지어 있는 쪽이 작업대라 소음이 가장 잦다. 반대편 끝자리로 가면 대화가 편하다.
대전의 장점은 비교적 이른 시간에도 문을 열어주는 바가 있다. 퇴근 후 가벼운 한 잔을 즐기고 싶다면 6시 반에서 7시 사이에 입장해 90분쯤 머무르는 루트를 추천한다. 이후에는 음악 볼륨이 올라가고 회전이 빨라진다. 길게 앉아 있고 싶다면 10시 이후, 마지막 라스트 오더 30분 전은 피하자. 허겁지겁 마시게 된다.
클래식에서 시그니처로, 한 잔씩 건너가기
첫 잔은 몸을 푸는 시간이다. 입맛이 깨어나기 전에 과하게 복합적인 칵테일을 마시면 디테일이 묻는다. 베이스의 성격이 명확한 클래식으로 시작하는 게 안전하다. 진토닉, 하이볼, 위스키 사워, 다이키리. 이 정도가 몸을 풀어준다. 대전 바들 중에는 소다의 탄산감을 유지하기 위해 토닉을 따로 주거나, 탑을 늦게 올려 주는 곳이 있다. 이런 곳은 얼음 표면이 매끈하고 투명하다. 삼투압을 줄이기 위해 얼음을 수차례 정수한 물로 직접 얼리거나, 하치오지 얼음을 쓰기도 한다. 유리잔의 차가운 결과 얼음의 질감은 그 바의 위생과 정성을 보여주는 간단한 지표다.
둘째 잔부터 시그니처로 넘어가면 재미가 커진다. 청춘의 거리 특유의 시그니처는 지역성과 계절감에서 나온다. 봄에는 딸기, 초여름엔 복숭아, 가을엔 참외와 무화과, 겨울엔 유자와 귤. 예를 들어, 진 베이스에 유자청과 베르무트를 얹고 솔잎 향을 입힌 칵테일을 한 곳에서 만난 적이 있다. 솔방울 스모크를 쓰지 않고도, 코리안더 씨드와 제스팅만으로 소나무 숲의 느낌을 만들어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막걸리를 클라리파이해 만든 밀키 펀치를 선보였다. 젖산의 둥근 산미와 럼의 바닐라가 겹치며 걷는 듯한 텍스처를 제공했다. 메뉴판에 없는 조합이라도 바텐더가 재미있다고 느끼면 종종 시도해 준다. 그래서 첫 잔에서 취향을 정확히 공유하는 행동이 중요하다.
위스키와 칵테일, 경계에 선 잔들
대전은 위스키 바가 강세다. 스페이사이드와 하이랜드 중심의 친화적인 라인업에, 가끔 아드벡 코리아 릴리즈 같은 스모키도 들어온다. 이런 바에서 칵테일을 주문하면 표준 레시피보다 베이스에 힘이 실린다. 오울드 패션드가 대표적이다. 설탕과 물을 강하게 줄이고, 비터스와 오일을 살려 위스키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스타일을 몇 곳에서 경험했다. 반대로, 칵테일 중심 바에서는 위스키를 칵테일로 받아들이는 관점이 뚜렷하다. 아이리시 위스키 베이스 펀치나, 라이트한 버번으로 만든 틴더리한 사워에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둘 중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오늘의 컨디션이 숙성감과 오크 향을 받아줄 만큼 준비됐는지 자문하고 선택하자. 덜 준비된 입맛에는 럼이나 아가베가 더 친절하다.
제로 프루프와 로우 ABV의 선택지
운전대를 잡았거나 술을 쉬고 있어도 바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청춘의 거리의 몇몇 바는 무알코올 칵테일을 진지하게 다룬다. 시럽과 소다만 섞은 달큰한 목캔디류가 아니라, 허브, 식초, 티를 층층이 쌓아 만든 맛을 낸다. 얼 그레이 콜드브루 티에 자몽 제스트와 토닉을 조합해 깔끔한 피니시를 만든 잔을 추천받은 적이 있다. 산미가 매끈했고, 향은 지속력이 좋았다. 로우 ABV 범위로는 베르무트 하이볼, 아페롤 스프리츠 변형이 안정적이다. 특히 대전은 카페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커피 리큐르를 무겁지 않게 다루는 재주가 좋다. 콜드브루 농축과 디메라라 시럽을 1:1로 희석해 에스프레소 마티니의 크레마를 대체하거나, 호지차 시럽으로 넛티한 향을 잡아 내는 식이다.
잔과 얼음, 보이지 않는 비밀
좋은 바는 유리잔 소리가 다르다. 얇고 가벼운 림에서 나는 맑은 톤은 음료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글라스 림을 지나 혀끝에 닿는 순간의 촉각이 향과 맛의 해석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전의 몇몇 바는 글라스 전용 식기세척기와 폴리싱 전담을 돌린다. 물 얼룩 하나 없이 반짝이는 잔은 그 자체로 입맛을 돋운다. 얼음도 마찬가지다. 표면이 거친 얼음은 거품을 많이 만들고 희석을 빠르게 진행시킨다. 칩 아이스가 필요한 주스 칵테일이 아닌 이상, 큰 큐브나 스피어를 선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이볼의 경우 3센티 두께의 바 하나가 잔 전체를 채워주는 형태가 이상적이다. 섬세한 바는 얼음의 온도까지 맞춰서 서브한다. 너무 차가운 얼음은 탄산을 죽이고, 너무 따뜻하면 향이 날아간다. 적정선은 0도에서 2도 사이. 이런 곳은 첫 모금부터 마지막까지 맛이 일정하다.
지역 재료의 이점과 한계
대전 근교는 과일 산지가 가깝다. 금산 인삼, 계룡산 자락의 배와 사과, 논산 딸기와 포도. 바에서 이 재료를 쓰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생과를 바로 블렌딩하거나, 시럽과 슈럽으로 가공해 저장성을 높이는 방법. 생과는 향이 풍부하지만 수분이 많아 칵테일의 구조가 무너지기 쉽다. 브릭스가 낮으면 술과 시럽 비율을 크게 손보거나, 펙틴을 다루는 요령이 필요하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간다. 반면 슈럽은 식초의 산미 덕에 안정적인 구조를 만든다. 대전 바들 중에서는 사과식초보다 백포도식초나 쌀식초를 쓰는 곳이 많다. 과일의 은은한 향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겨울철 유자는 과즙과 제스트의 쓴맛 조절이 관건이다. 제스트를 과하게 쓰면 알베도 쓴맛이 올라오고, 바닐라와 계피로 덮으면 지역의 개성이 사라진다. 균형을 맞추는 손맛이 진짜 차이를 만든다.
바텐더와의 대화가 맛을 바꾼다
오래 기억에 남는 잔은 레시피뿐 아니라 맥락 때문이다. 어떤 바에서, 어떤 음악과, 누구와,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가. 청춘의 거리에서는 바텐더와의 대화가 그 맥락을 만든다. 메뉴에 없는 조합을 부탁할 때는 이유를 설명해 보자. 오늘 매운 음식과 고기를 먹고 와서 지방감이 남아 있다거나,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고 싶다거나, 달지만 깔끔한 피니시를 원한다는 식의 정보를 주면, 바텐더의 레퍼토리가 열리기 시작한다. 또,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잔이 있었다면 예의 있게 피드백을 해라. 다음 잔이 달라진다. 칵테일은 대화형 음식이다. 손님과 바텐더가 함께 brix와 dilution의 만남을 조율한다.
함께 먹는 작은 접시, 페어링의 기본
대전의 바 대부분이 간단한 안주를 갖춘다. 치즈와 살라미, 감자튀김, 간장마늘치킨 같은 편안한 메뉴가 흔하다. 칵테일 페어링 관점에서 보면, 지방이 높은 안주는 시트러스 베이스와 잘 맞고, 튀김류는 탄산감이 있는 잔과 상성이 좋다. 오일 파스타나 크림 베이스와는 진의 허브와 아페리티보류의 약초 향이 궁합이 맞는다. 다만 짠맛이 센 안주는 위험하다. 희석을 가속화하고, 산미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프렌치 프라이를 먹을 거면 소스 양을 줄이고, 칵테일은 스트롱 대신 로우 ABV로 간다. 해산물에 시트러스가 당기는 건 직관적이지만, 과도한 레몬즙은 칵테일의 산과 부딪혀 입안을 피곤하게 만든다. 접시와 잔의 산미 합계를 낮추는 감각이 필요하다.
좋은 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준비
칵테일은 도수가 다양하고, 향과 당이 알코올을 감춘다. 그래서 마시기 쉽고, 다음날이 무겁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대비책이 몇 가지 있다.
- 바를 옮길 때마다 물 한 컵을 주문해 잔과 잔 사이 시간을 확보한다. 첫 잔은 달지 않게, 셋째 잔부터는 도수를 낮춘다. 마지막 잔을 마신 후 20분을 비워 신체가 알코올과 당을 분리해 인지하도록 돕는다.
이 세 가지만 지켜도, 다음날의 차이를 몸이 기억한다. 특히 설탕과 시럽의 누적이 숙취의 큰 원인이다. 술이 아니라 당이 사람을 지친다. 디저트 같은 잔은 한 번의 하이라이트로 두고, 나머지는 드라이하게 가져가면 좋다.
초보를 위한 안전한 첫 루트
대전에서 칵테일을 처음 접한다면, 한 블록에 모든 것이 모여 있는 청춘의 거리는 최적의 무대다. 평일 저녁 7시에 첫 바에 들어가 진토닉 혹은 하이볼로 시작한다. 내부가 너무 붐비면 뒷골목의 작은 바를 탐색한다. 8시 반쯤 두 번째 바로 이동해 시그니처를 주문한다. 과일 베이스라면 산미와 당의 밸런스를 물어보고, 허브나 스파이스를 어떻게 쓰는지 설명을 듣는다. 이 대화가 밤을 깊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9시 반께 제로 프루프 혹은 로우 ABV 잔을 하나 더. 계산할 때 다음번을 위한 예약 가능 시간을 물어본다. 인기 많은 바는 주말 대기를 피하기 어렵다.
바 운영의 뒷면, 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손님 입장에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한겨울에도 민트는 신선해야 하고, 라임은 비쌀 때가 비정상적으로 비싸다. 전국적 공급이 흔들리는 시기에는 시그니처의 맛이 미세하게 변한다. 바는 그 gap을 블렌딩으로 메꾼다. 라임 100을 레몬 70과 감귤 30으로 대체하고, 시럽의 농도를 1.1배 올린다. 이런 조정은 레시피의 변질이 아니라, 맛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시도다. 또 하나, 클리어 아이스를 만드는 과정은 시간이 많이 든다. 방향성 얼림으로 불순물을 위로 몰아낸 뒤, 절단, 디버링, 다시 냉동까지 하루를 태운다. 그래서 얼음 비용이 들어간 칵테일은 단 500원, 1천 원 차이로도 맛의 격이 변한다. 그 값을 아까워할 필요가 없다.
음악, 조명, 냄새가 만드는 3분의 1
칵테일의 맛은 혀에서만 완성되지 않는다. 대전의 좋은 바는 음악 볼륨을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맞춘다. 힙합이든 시티팝이든, 80 dB를 넘지 않게 관리한다. 조명은 테이블 위에 스폿을 주고 주변은 어둡게 유지한다. 손님이 사진을 찍어도 색이 이상하지 않도록 2700K에서 3200K의 전구색을 쓴다. 향초를 쓰는 곳은 캔들 향이 잔의 향을 덮지 않도록 무향 혹은 시트러스 라인으로 제한하는 편이 좋다. 이런 디테일은 음료 자체가 괜찮을 때 비로소 차이를 만든다. 맛이 흔들리는데 조명만 근사하면, 손님은 두 번 오지 않는다. 청춘의 거리에서 오랫동안 버티는 바는 음료, 서비스, 환경의 삼각형을 고르게 잡는다.
혹시 혼자라면, 혼술의 기술
혼자 마시는 밤은 긴장이 풀리는 대신 어색함이 남는다. 바에서는 그 어색함을 줄일 방법이 많다. 바 카운터에 앉아 첫 잔을 주문할 때 오늘의 추천을 묻고, 두세 마디를 주고받는다. 책이나 작은 노트를 꺼내는 것도 좋다. 대전 바는 혼술 손님을 익숙해했다. 특히 평일에 혼자 온 손님에게는 물 리필과 스낵 제공이 꼼꼼하다. 성급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 첫 잔의 향이 반쯤 날아간다. 음악을 듣고 주변을 관찰하며, 잔의 온도 변화와 향의 층을 느껴보자. 혼술에 최적화된 잔은 다이키리처럼 구조가 간명한 칵테일이다. 한 잔의 완급을 또렷하게 파악할 수 있다.
책임감 있게 마시기, 현실적인 대안
대전은 자가용 이동이 잦다. 그래서 대리운전과 택시, 심야 버스의 타이밍이 중요하다. 11시 이후에는 택시 호출이 몰린다. 바의 라스트 오더 전에 이동 수단을 확보해 두자. 라스트 잔을 줄 때 바텐더에게 귀가 계획을 말하면, 물과 간단한 스낵을 더 챙겨주는 곳도 있다. 일부 바는 알코올 측정기를 비치한다. 로우 ABV라고 방심하면 안 된다. 체중, 속도, 식사 여부에 따라 수치가 크게 달라진다. 믿을 수 있는 방법은 음주 운전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장거리 귀가가 필요하다면, 청춘의 거리 가장자리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미리 잡아두는 선택지도 있다.
도시와 바, 서로 닮아가기
대전의 칵테일 바는 몇 년 사이 빠르게 성숙했다. 바텐딩 챔피언십에서 입상한 젊은 바텐더들이 돌아와 가게를 열고, 커뮤니티가 생겼다. 각 바가 서로의 시그니처를 맛보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덕분에 트렌드가 서울과 거의 동시에 들어온다. 라임 부족 시즌에는 카피른하 변형이 늘고, 겨울엔 핫 토디 라인업이 늘어난다. 분자 기법이나 클라리피케이션, 지방세척 같은 기술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그럼에도 대전의 바는 지역성을 놓치지 않는다. 커다란 도시의 복제본이 아니라, 손님과의 밀도가 높은 공간을 지향한다. 그래서 다시 가면 표정이 달라지고, 계절마다 맛이 달라진다.
마지막 잔, 오래 남는 표정
청춘의 거리에서 끝내기 좋은 잔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네그로니의 단단한 쌉쌀함으로 밤을 봉인하고, 누군가는 벚꽃이 진 뒤의 살짝 쓸쓸한 진 피즈로 흔적을 남긴다. 나는 종종 스피릿 포워드와 제로 프루프 사이 어딘가를 고른다. 베르무트와 수제 토닉, 약간의 생강 시럽에 라임 제스트를 깔아 마무리한다. 도수는 낮지만, 허브와 스파이스, 씁쓸한 껍질 향이 남아 걷는 길을 덜 허전하게 만든다. 청춘의 거리를 걸어 나올 때, 비로소 대전의 밤 공기가 어떤 맛인지 알게 된다. 과장되지 않고, 소박하지만 정직하다. 적당히 달고, 은근히 쌉쌀하며, 천천히 길게 간다.
이 도시에서 칵테일을 밤민 즐기는 일은 취향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자기만의 속도를 고르며, 바와 손님 사이의 대화를 조금씩 넓혀 가는 일. 같은 잔도 다른 날엔 다르게 느껴진다. 그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된다. 청춘의 거리의 가치는 화려한 간판이나 북적임이 아니라, 한 잔을 둘러싼 세심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세심함은 묵묵하게 유지된다. 오늘 밤도 누군가는 얼음을 깎고, 잔을 닦고, 비터스를 덜어낸다. 우리는 그 수고를 천천히 마신다.